LH 3기 신도시 종합정보 포털

  미래로 향하는
         새로운 길의 도시

지구명
인천계양 공공주택지구
면적
전체면적 : 3,330,409㎡(1,008천평)

본단지 : 3,330,409㎡(1,008천평)

사업시행기간
지구지정(‘19년) ~ 사업준공(예정)(‘26년)

*위 사업시행 기간과 달리 사전청약 일정 등은 별도 공고 등을 통해 안내될 예정

위치
인천광역시 계양구 귤현동, 동양동, 박촌동, 병방동, 상야동 일원
사업시행자
인천광역시, 한국토지주택공사, 인천도시공사
인구 및 주택계획
주택 17천 호, 인구 41천 인

위치도

인천 계양 지구 위치도

입지여건
  • 서울에 연접하며 계양구청, 김포공항, 마곡지구 인근에 위치
  • 인천 도시철도 1호선, 공항철도 및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등이 인접하여 광역교통여건 우수

홍보동영상

서울, 경기, 인천을 잇는 수도권 핵심거점
인천계양 테크노밸리가 미래를 향하는 새로운 길의 도시로 조성됩니다.

인천계양 공공주택지구 아카이브

계양 마지막 기억을 심다. 박촌동, 동양동, 병방동, 귤현동, 그리고 상야동
인천계양 전경 이미지
박촌동·동양동·병방동·귤현동·상야동 인천광역시 계양구 동쪽의 다섯마을. 계양산과 둥그재산을 베개 삼고 굴포천을 이불삼아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을을 이루고 수백 년 세월 동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왔습니다.
김포평야로 부르던 계양 땅에 다섯 마을이 있다. 박촌동, 동양동, 병방동, 귤현동, 상야동. 제작기 다른 이름 만큼이나 마을마다 품은 이야기도 각양각색이라. 언젠가 기억 저편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마을의 경관과 이야기를 함께 살펴본다.
박씨들 많은 동네 박촌동. 박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하여 박촌동이라 불린 동네. 충헌공파 박강의 후손들이 뿌리내린 이곳은 1동의 본동, 2동의 송현, 3동의 마가묘라는 세 마을로 이어져오고 있다. 본동은 이미 개발이 진행되어 논밭으로 가득하던 모습을 잃어버린지 오래지만, 박촌동을 대표하는 종친회와 마을회관을 지켜오고 있다. 송현마을은 일제 강점기 서부간선수로의 축조와 함께 섬처럼 분단된 마을이다. 송현은 한때 소나무가 가득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수로가 생겨나며 농사를 짓기위한 벌판으로 바뀌고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동쪽 벌판을 품은 동네 동양동. 당산을 품은 동네라 하여 당미로 불리고,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양지말이라 불린 동양동. 동양동 도심 사이로 흐르는 서부간선수로를 따라가면 금세 벌판이 나온다. 넓게 뻗은 논 사이로 놓인 농막들. 그 안에는 저마다의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농부들이 있다. 나라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한 순평군 이선봉과,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택한 며느리의 전설이 전해오는 곳. 그 후손들과 이웃들이 모여 일구어낸 마을이다. 그 옛날 조선시대 부평도호부의 중심마을이었던 동양동. 일제강점기, 서부간선수로와 함께 부평수리조합이 일대를 개간하면서 사람들이 각지에서 찾아와 뿌리를 내렸다.
깃발 번쩍 들어 올리던 형님 동네 병방동. 동양동 남쪽, 수도권 순환고속도로변을 따라 찾아든 동네 병방동. 일제강점기, 계양면을 대표하는 면사무소가 있어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병방동. 오래전 이곳은 어떤 동네였느냐는 물음에, 줄곧 마을을 지켜온 한 어르신은 먼 옛날 군인들이 말을 키우던 주요 군사지역 이었노라 답했다. 그리고 대대로 충절을 지킨 무인돌이 자주 나왔던 곳이라고 전했다. 또한 박촌동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박씨 집안의 동네였고, 농사철 풍물놀이마다 가장 큰 깃발을 들고 자랑하는 대장 동네였다고 전했다.
귤이 아니라, 고개가 있는 귤현동. 북쪽의 황어장과 동쪽의 김포로 향하는 교통중심지였던 귤현동. 조선시대 때부터 구부러진 고갯길, ‘굴재'를 품은 동네라 하여 굴현리라 이름 지었건만, 일제강점기에 들어 한 작자가 문서에 '굴(屈)'자를 귤(橘)'자로 잘못적어 지금까지 귤현리라 불리고 있다. 귤이 들어가는 이름 탓에, 귤이 많이 자라는 동네였다는 오해가 함께 전해졌던 농촌마을. 허나 이게 또 마냥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는 한 어르신 '고개에 귤나무 하나가 있긴 했어’ 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흙 좋고 쌀 좋은 동네  상야동 상야동은 하야동, 평동과 함께 벌말로 불렀다 드넓은 벌판에 자리 잡은 동네라 하여 이름이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시대까지 야리로 불리던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벌말의 세 마을로 나뉘었다. 하지만 세 마을은 여전히 한 마을과도 같아서, 구장 한 명이 온 마을을 관리하곤 했다. 굴포천이 한강을 향해 흐르는 대로, 강물을 따라 귤현동에서 상야교를 건너면 상야동이 금세 나타난다. 어찌나 흙이 고운지, 여기서는 돌을 걸러낼 체도 필요 없었다는 마을. 벼 먹일 물은 많아도 사람 먹을 물이 부족했다는 마을.
인천계양신도시 마을기록물. 계양, 마지막 기억을 심다. 박촌동, 동양동, 병방동, 귤현동, 그리고 상야동
계양 마지막 기억을 심다. 박촌동, 동양동, 병방동, 귤현동, 그리고 상야동 인천계양 전경 이미지 박촌동·동양동·병방동·귤현동·상야동 인천광역시 계양구 동쪽의 다섯마을. 계양산과 둥그재산을 베개 삼고 굴포천을 이불삼아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을을 이루고 수백 년 세월 동안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왔습니다. 김포평야로 부르던 계양 땅에 다섯 마을이 있다. 박촌동, 동양동, 병방동, 귤현동, 상야동. 제작기 다른 이름 만큼이나 마을마다 품은 이야기도 각양각색이라. 언젠가 기억 저편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마을의 경관과 이야기를 함께 살펴본다. 박씨들 많은 동네 박촌동. 박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하여 박촌동이라 불린 동네. 충헌공파 박강의 후손들이 뿌리내린 이곳은 1동의 본동, 2동의 송현, 3동의 마가묘라는 세 마을로 이어져오고 있다. 본동은 이미 개발이 진행되어 논밭으로 가득하던 모습을 잃어버린지 오래지만, 박촌동을 대표하는 종친회와 마을회관을 지켜오고 있다. 송현마을은 일제 강점기 서부간선수로의 축조와 함께 섬처럼 분단된 마을이다. 송현은 한때 소나무가 가득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수로가 생겨나며 농사를 짓기위한 벌판으로 바뀌고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동쪽 벌판을 품은 동네 동양동. 당산을 품은 동네라 하여 당미로 불리고,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양지말이라 불린 동양동. 동양동 도심 사이로 흐르는 서부간선수로를 따라가면 금세 벌판이 나온다. 넓게 뻗은 논 사이로 놓인 농막들. 그 안에는 저마다의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농부들이 있다. 나라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한 순평군 이선봉과,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택한 며느리의 전설이 전해오는 곳. 그 후손들과 이웃들이 모여 일구어낸 마을이다. 그 옛날 조선시대 부평도호부의 중심마을이었던 동양동. 일제강점기, 서부간선수로와 함께 부평수리조합이 일대를 개간하면서 사람들이 각지에서 찾아와 뿌리를 내렸다. 깃발 번쩍 들어 올리던 형님 동네 병방동. 동양동 남쪽, 수도권 순환고속도로변을 따라 찾아든 동네 병방동. 일제강점기, 계양면을 대표하는 면사무소가 있어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병방동. 오래전 이곳은 어떤 동네였느냐는 물음에, 줄곧 마을을 지켜온 한 어르신은 먼 옛날 군인들이 말을 키우던 주요 군사지역 이었노라 답했다. 그리고 대대로 충절을 지킨 무인돌이 자주 나왔던 곳이라고 전했다. 또한 박촌동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박씨 집안의 동네였고, 농사철 풍물놀이마다 가장 큰 깃발을 들고 자랑하는 대장 동네였다고 전했다. 귤이 아니라, 고개가 있는 귤현동. 북쪽의 황어장과 동쪽의 김포로 향하는 교통중심지였던 귤현동. 조선시대 때부터 구부러진 고갯길, ‘굴재'를 품은 동네라 하여 굴현리라 이름 지었건만, 일제강점기에 들어 한 작자가 문서에 '굴(屈)'자를 귤(橘)'자로 잘못적어 지금까지 귤현리라 불리고 있다. 귤이 들어가는 이름 탓에, 귤이 많이 자라는 동네였다는 오해가 함께 전해졌던 농촌마을. 허나 이게 또 마냥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는 한 어르신 '고개에 귤나무 하나가 있긴 했어’ 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흙 좋고 쌀 좋은 동네  상야동 상야동은 하야동, 평동과 함께 벌말로 불렀다 드넓은 벌판에 자리 잡은 동네라 하여 이름이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시대까지 야리로 불리던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벌말의 세 마을로 나뉘었다. 하지만 세 마을은 여전히 한 마을과도 같아서, 구장 한 명이 온 마을을 관리하곤 했다. 굴포천이 한강을 향해 흐르는 대로, 강물을 따라 귤현동에서 상야교를 건너면 상야동이 금세 나타난다. 어찌나 흙이 고운지, 여기서는 돌을 걸러낼 체도 필요 없었다는 마을. 벼 먹일 물은 많아도 사람 먹을 물이 부족했다는 마을.

주요 추진경위

2018
10. 26.
  • 인천계양 공공주택지구 지정 제안 (LH→국토부)
12. 19.
  • 지구지정 주민공람
    (`18.12.19. ~ `19.01.04. 17일간)
2019
04. 12.
  • 전략환경영향평가(초안) 공고 및 공람
    (`19.04.12. ~ `19.05.24. 30일간)
05. 14.
  • 전략환경영향평가(초안) 주민설명회 개최
06. 26.
  • 전략환경영향평가(초안) 공청회 개최(1차)
07. 12.
  • 전략환경영향평가(초안) 공청회 개최(2차)
09. 25.
  •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완료
09. 26.
  •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
10. 15.
  • 지구지정 및 지형도면 고시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9 - 560호)
2020
07. 22.
  • 공공주택지구 지정(변경) 고시 (국토교통부 고시 제2020 - 520호)
2021
01. 25.
  • 광역교통개선대책 확정
06. 03.
  • 공공주택지구 지정변경(2차) 및 지구계획 승인 고시(국토교통부고시 제2021-825호)
2022
11. 07.
  • 공공주택지구 지구계획 변경(1차) 승인 알림
11.
  • 조성공사 착공
2023
11. 29.
  • 지구지정 및 지형도면 고시 (국토교통부 고시 제2023 - 677호)
2026
12.
  • 사업 준공 (예정)